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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유시인 정형근이 최고의 음악프로듀서 고 김진성에게 바치는 송가

유난히 길었던 올 해 여름 한 가운데서 우리는 김민기라는 거목을 떠나 보냈다. 워낙 인터뷰와 멀었던 인물이었기에 우리는 그의 죽음에 있어 주변 사람들의 기억과 애도에 의지해야 했다. 자칭 “뒷것” 김민기는 어쩌면 그의 죽음에 이르러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아니 새롭게 모든 세대에 다가선 인물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지금의 관점이고 사실 김민기는 언제나 깊고 넓은 범위에서 우리 대중음악사에 영향을 끼쳐 온 사람이다. 그리고 김민기와는 다른 방향과 깊이에서 우리 대중음악사에 큰 영향을 끼치고 떠나간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바로 김진성 프로듀서이다.

그의 일대기와 대표적인 작업들을 여기서 일일이 거론할 순 없지만 그래도
몇 가지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우선 그가 처음 기획 연출한 CBS의 <꿈과 음악 사이에>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얘기하고 싶다. 김창완, 하덕규, 장기호, 조규찬 등이 디제이로 거쳐 간 이 프로그램은, 70년 10월에 첫 전파를 탄 이래로 잠깐의 공백기를 제외하면 지금까지 현존하고 있는 심야 음악프로그램이다. 유신정권 아래 대중음악도 철저한 감시와 통제를 받기 시작하던 무렵, 이 프로그램에는 70년대의 청년문화를 대변하는 다양한 포크 뮤지션들이 출연하여 자유와 낭만을 노래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김민기도 자리하고 있었다. 아침이슬이 수록된 김민기의 1집에 선명하게 표시된 “김진성” 의 이름은 제작자로서, 프로듀서로서의 역할에 그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사실 이 부분은 가요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어쩌면 알려지길 원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린 이 부분 역시 선명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다. 김진성은 그 이후로도 수많은 가수들을 발굴하고 방송에 데뷔시키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지금도 방송중인 KBS의 <가요무대> 라는 프로그램의 자문을 17년간 맡았다.

프로듀서 김진성을 제대로 추억하고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 또 다른 “뒷것”으로 평생을 살아 온 그에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잘 정리된 기록은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명의 구원자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뮤지션 정형근이다. 97년 SBS 여의도 시절, 예전 그 사옥에서 만나게 된 필자와 정형근은 아직도 그 인연의 끈을 잘 잡고 있다. <40억년 후>라는 곡에 큰 감명과 충격을 받은 필자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존재를 알 수 있도록 하는데 열심이었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언더그라운드 뮤지션이자 음유시인인 정형근은 앞서 언급한 김진성 프로듀서의 유일무이한 친구이자 동생이자, 험난했던 인생길을 함께 걸어 왔던 길동무였다. 그리고 정형근은 김진성 프로듀서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유품과 작업들을 정리할 유일한 사람으로 남았다.

김진성의 삶을 이야기하고 자신과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는 정형근 만의 오마쥬는 한 장의 앨범과 에세이로 그 시작을 알렸다. 12곡이라는 상당한 수의 트랙으로 완성된 그와 김진성의 이야기. 그 안에서 우리는 7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는 두 사람의 진솔하고 투박한 날 것의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가사는 거의 에세이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내레이션과 노래 부름의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에게 들려준다, 그들의 인연과 그 배경이 되었던 춘천과 술, 그리고 음식들을.

폭설이 내렸던 어느 겨울 이삿날, 형이 사왔던 딸기와 그 배경에 흘렀던 비틀즈를 노래하는 첫곡 <겨울딸기>, 필자는 이름도 처음 들어 본, 뜨겁게 마시는 조껍데기술로 기억하는 형과의 추억 <형과 조껍데기술>, 70년대 청바지, 생맥주와 함께 시대정신을 대변했던 통기타 문화를 노래한 <통기타>, 김진성 프로듀서의 대표적인 작업과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노래한 <나는 방송맨>, 형을 늘 마중 나가던 아우의 심정이 녹아 있는 <춘천역>, 형이 이야기해준 형의 첫사랑 이야기를 맘 속 깊이 간직했다 꺼내 놓은 <첫사랑>, 형이 늘 좋아 했던 고등어 찜 냄새가 올라오는 듯한 <고등어>, 전쟁 통에 엄마를 잃고 거리를 해매였던, 형의 어린 날 뼈아픈 기억을 옮겨 놓은 <염천교>, 형의 장례식장에 찾아 왔던 김민기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는 <민기형 고마워> 등 총 12개의 트랙은 덤덤하게 이야기하듯, 슬픔보단 고마움에 가득찬 느낌으로 김진성을 기억한다. 세상을 초월한 듯한 목소리로 듣는 이의 가슴에 큰 울림을 주는 정형근이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유독 그가 가진 거칠지만 따뜻한 정서가 묻어 나온다. 떠나간 형 앞에서 그의 노래는 복잡한 수식 없이 그저 그리움 가득하다.

매년 여름 받는 홍천의 옥수수가 냉동실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음악은 필자의 깊은 곳 어딘가에 늘 존재한다. 이번 앨범도 곱씹어 들은 뒤 마음 한켠에 잘 보관해 둘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진정한 음유시인 정형근의 새로운 앨범에 필자는 또 한 번 놀라움과 감사함을 전한다.
2024년 늦가을, 프로듀서 고민석

[CREDIT]

EXECUTIVE PRODUCER: 정형근
PRODUCER: 조현석
ALL SONG COMPOSED & LYRICS: 정형근
VOCAL DIRECTOR: 조현석
ALL ARRANGED: 조현석
ALL MIDI PROGRAMING: 조현석

PIANO & KEYBOARDS: 조현석(All Track)
A.GUITAR: 장재원(Track 1,2,3,4,5,6,7,8)
NYLON GUITAR: 장재원(Track 7.8)
E.GUITAR: 장재원(Track 2,5,6)
BASS GUITAR: 손병규(Track 2,3,5)

RECORDING ENGINEER: 김인섭, 이채원
MIXING ENGINEER: 이효섭(Track 2,5,6,7,12), 김인섭(Track 1,3,4,8,9,10,11)
MASTERING ENGINEER: 이효섭
RECORDING STUDIO: MOON STUDIO
MIXING & MASTERING STUDIO: MOON STUDIO, ML STUDIO
ART DIRECTOR & DESIGN: 박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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